책소개
초능력자 셋이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 한 호텔에 모인다. 그중 두 사람이 초능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일한 초능력자로 염력을 쓸 줄 아는 미샤는 전날 무리하는 바람에 컨디션이 좋지 않다. 학회 참석이 어려워진 가운데 이들을 학회에 데려가기로 했던 옐레나마저 감기로 앓아눕는다. 라리체프가 아내 옐레나를 위해 세 사람을 설득하고, 학회에서 좋은 성과를 끌어내지만 모든 게 속임수였다는 게 밝혀진다. 옐레나를 짝사랑하고 있던 미샤는 라리체프를 사기꾼으로 매도하며 옐레나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옐레나는 라리체프가 가장 위대한 초능력자라며 미샤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녀는 가장 위대한 초능력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가장 강력한 초능력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멜로드라마이자 허를 찌르는 반전, 유머와 재치 넘치는 대사, 풍자가 있는 코미디다.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 직전 소련 상황에서 탄생한 풍자극이다. 당시 소련은 초능력자에 대한 연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자신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고 헌된 꿈을 좇는 초능력자들은 민중에게 생필품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무능한 소련 정부의 초상으로 비쳐진다.
200자평
20세기 러시아 연극을 대표하는 작가 그리고리 고린의 코미디를 초역으로 소개한다.
지은이
그리고리 이즈마일레비치 고린(Григорий Израилевич Го-рин, 1940∼2000)은 20세기 후반을 풍미한 러시아 극작가다. 그는 희곡뿐만 아니라, 유머, 풍자, 영화 시나리오 등 다방면에서 집필 활동을 했으며, 시사평론도 발표했다. 아버지 이즈라일 아벨레비치 옵시테인(Израиль Абелевич Оф-штейн, 1904∼2000)은 2차 세계대전에서 공을 세운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응급실 의사였다. 그는 아버지의 성(姓) 옵시테인과 어머니의 성 고린스카야를 합쳐 고린시테인(Го-ринштейн)이란 필명을 사용하다가 1963년에는 고린이란 성으로 완전히 개명한다. 고린의 뜻을 묻자 그는 ‘그리고리 옵시테인이 성을 바꾸기로 결심했다(Гриша Офштейн Ре-шил Изменить Национальность)’란 문장의 첫 글자를 땄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고린은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소질을 보였다. 처음으로 시를 쓴 것은 일곱 살 때였다. 초등학교에서도 단편소설이나 콩트 같은 짧은 글을 창작하곤 했다. 고린은 모스크바 세체노프 의대를 졸업한 뒤 4년 정도 응급실에서 의사 생활을 한다. 이때도 그는 글쓰기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풍자와 유머가 가득한 그의 글은 여러 잡지나 신문에 실렸고,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66년에는 동료 작가 아르카디 아르카노프와 <유럽으로>란 코미디를 공동 집필했다. 이후 아르카노프와의 공동 작업은 <연회>, <저택에서 벌어진 작은 코미디> 등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후반부터 고린은 러시아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70년대에는 TV코미디쇼에 고정 출연을 하기도 했다. 명성이 높아지자 소련 작가동맹 회원이 되었고, 본업인 의사는 그만둔다. 1970년대 고린은 렌콤극장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인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연출가 마르크 자하로프와 함께 제작한 <헤로스트라토스를 잊어라>, <스위프트가 만든 집>, <추모 기도>, <광대 발라키례프> 같은 작품은 렌콤극장을 명문 극장으로 승격시킨 도약대가 되었다. 특히 자하로프가 영화화한 <사랑의 공식>과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은 기록적인 관객 동원에 성공한 명작이었다.
늘 재치와 해학이 넘치는 그였지만, 건강에 대해서만큼은 절대 장난을 치지 않았다. 주변 사람이 아프면 그는 의사 출신답게 병원에 가길 진지하게 권했다. 하지만 정작 자기 건강에 대해서는 진지하지 못했다. 고린은 2000년 6월 15일 죽음을 맞이한다.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였다.
옮긴이
백승무는 러시아 전문가이자 연극평론가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학술원 산하 러시아문학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획득했다(학위 논문: <불가코프의 극작술 연구>). 2008년부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공연과 이론≫, ≪한국희곡≫, ≪TTIS≫의 편집위원이다. 러시아 연극의 이론적, 수행적 특장점을 한국 연극의 토양에 시비(施肥)하는 것이 주관심사다. 주요 논문으로는 <불가코프의 메타드라마 연구>, <스타니슬랍스키의 모순에 대한 소고>, <대순환의 유토피아: 은시대 연극 미학의 순환론과 종합주의> 등이 있고, 저서로는 ≪20세기를 빛낸 극작가 20인≫(살림출판사), ≪한국연극, 깊이≫(우물이있는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까치소리: 김동리 단편집≫(러시아 IRLI출판사), ≪부활≫(문학동네)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옐레나 페트로브나: (벌떡 일어난다. 얼굴은 분노로 타오른다.) 입 다물어요! 저속한 사람 같으니! 올레크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당신이 도대체 그이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 당신에게 무슨 권리가 있다고! 그이는 천재지만 절 위해 모든 것을… 절 위해 자기 자신을 짓밟은 사람이라고요. 절 위해 자기 연구도 그만뒀어요! 제가 쫓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자신보다 저를 더 믿어 주던 사람이에요! 태양을 팔아먹었다고요? 팔아먹은 게 아니라, 저 때문에 빼앗긴 거라고요. 당신은 정말 바보 천치군요! 당신들 중에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누군가요? 그이는 지구상에서 제일가는 재능을 지녔어요. 남을 사랑하는 거요. 좀 전에도 제가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을 거예요. 전 항상 그이가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방해하죠.